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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따까리들 (단상)

[작문] 테러리스트의 이념. (주제어 '테러')



‘어쨌든 참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영화, TV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수월하고 깔끔하게, 심지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아니라고,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은 ‘실무적으로’ 고급 기술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공적인 자살 사례들만 접하고는,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려워’, '산다는 게 참 별 거 아니야‘라고 생각들 하지만 사실은 실패한 자살 사례가 훨씬 많다구요. 어떤 일본군 장교는 2차 대전 패배 후 책임감을 느끼고 할복을 하려다가 주변에 일본도가 없어 배에 총을 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창자만 흩어놓고 다시 살아나, 전범 재판을 받고 교수형을 당했다고, 그런 웃지 못할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살도 아니고, 연쇄 살인도 아니고, 수년을 계획한 테러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이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보고 싶고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무서운 건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요.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전 한번 가보지 못할 먼 타지에서 벌어진 일에 비상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겠습니다. ‘미친 놈’이라서 가능하다는 생각은 약자들의 위안일 뿐입니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까?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측면에서 그는 강자이고 그럴 수 없는 우리는 약자입니다.

게다가 테러는 그 확고한 ‘이념성’으로 또 한 번 다른 살인들과 구분됩니다. 어떤 이념에 대한 사명감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종교적이든 군사적이든 정치적이든 뚜렷한 목적. 이번 노르웨이 테러 사건은 폭을 한 차원 넓혔습니다. 사회-문화적으로 뚜렷한 이념이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념이라니, 박물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일 겁니다. 이 시대에 이념이란, 쓸데없거나 위험한 물건 정도겠지요. 민주주의 시대, 총기 소지 불법국가에서 ‘총’과 같은 게 이념이 아닐런지요. 우리나라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보통의 사람들에게 총은 필요없고, 또 위험한 물건입니다. 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는 보통이길 거부한다는 표시지요, 명백한 구속 사유입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미쳐라’, ‘답은 없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 ‘강한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실현시켜라’,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 다만 네 의지가 약할 뿐이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총을 가지지 못하듯이, 이념을 가져서는 위험합니다. 그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죠, 다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에서 말입니다. 그들, 이미 자신이 실현한 세상을 누리고 있는 그들요. 중요한 것은 결코 말해지지 않습니다. “열정과 의지를 보여라, (다만 내 마음에 들도록.) 그러면 너희는 성공할 것이다. (내가 이뤄놓은 세상 안에서)”

아마, 테러리스트들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새 세상을 열고자 하는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저지당합니다. 이념은 그들이 실제로 휘두른 살상무기보다도 더 위험한 무기였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의 새 이념이 기존의 이념과 대적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영웅대접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구시대의 유물인 줄만 알았던 이념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을 미친 놈으로 치부하고,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념이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희미한 이 시대에, 이념은 그 경계와 함께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최후에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이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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