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길 위에 있다. (여행)

시드니. 호주. 2010년 2월.

koddaggari 2011. 7. 18. 05:41




2010년 2월 시드니는, 세계적 스케일의 게이 축제와 중국의 춘절 기간이 겹쳐 유래없이 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No vacancy" 고개를 내젓는 호텔직원을 뜯어먹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는 동성애를 지지한다, 중국 음식도 좋아한다.
다만 한 마리 수컷이 고개를 들지 못할 뿐이었다.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수컷의 의무가 아닌가.

여행은 시작과 동시에 나를 발가벗겼다. 나보다, 그 꼴같잖음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 더 놀랐다. 
"미안해.. 나 같으면 그냥 비행기타고 돌아갔겠다..."
"솔직히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리고 웃음...
힘든 시간이 지나 시원한 맥주 한잔씩을 사이에 두고
'평생 함께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맞은편에서는 '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믿고 의지할만한가?

여행을 떠나는 순간 자유는 선물처럼 주어지는 게 아니구나, 여행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두 부류다.
계획 짜는데에 아주 도가 트여서 시간단위로 계획적인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계획 짜는 데에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 오히려 즐기는 사람, 한 부류.
여행에서 특별히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그저 숨쉬는 것이 즐거운 사람, 계획없음의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 또 한 부류.
원하는 건 많으면서 계획 짜기도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편안하게 집에 있어야 하는 거다.
귀찮아도 꼭 해야 하는 것들, 그거 무시하다가는 귀찮음에 파묻혀 죽어간다.

글쓰기도 비슷하다.
창의적인 이야기는 텅 빈 우주에서 긴 포물선을 그리며 투욱 튀어 나오지 않는다.
허접스러운 것 같아도 꾹 참으며 기존의 잡스런 작품들도 모두 섭렵해 그 구조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쓰레기들 사이에서 거짓말처럼 꽃을 피워낸다.
허접스러운 것 같아도 꾹 참으며 하루 한 문장이라도 직접 써보지는 않으면서, 이 글은 저래서 안좋고 저 글은 이래서 안좋다고 지적질이나 할 뿐이라면 그냥 남이 써놓은 글이나 볼 일이다.
나는 그 때에,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 글, 그리고 삶이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고 어렴풋하게 생각하게 됐다.
(여행이 두 글자라 아쉽지만), "나", "여행", "글", 그리고 "삶".
노트 한 쪽마다 하나씩 크게 써 놓고서야 비로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