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따까리들 (단상)

다를 수 있는 사람들마저 다를 수 없는 현실

koddaggari 2011. 8. 2. 18:02
화려한 프로필보다 당장의 고민이 그 사람을 더 잘 드러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면접보러 온 듯 공적인 프로필을 읊어대면, "그래서 요즘 고민이 뭐야?"라고 물어야 한다. 카이스트(KAIST) 학생들의 고민은, 달라도 뭔가 다르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섞어서 물었다. 가뜩이나 시끄러웠던 카이스트 연쇄 자살 소동에, 나는 언론이 주목한 등록금, 학점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보다도, 그들만의, 그들이어서 가능한 실존적인 고민이 있지 않을까,
혐의를 두었었다. 나와 같은 기대를 가지고 이 글을 읽는다면, 여기서 그만두길.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다"고 말했으니까.

함께 중국 운남성을 여행하던 때에, 이 친구는 문학적 감수성과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나를 놀라게 했었다. '연구실의 박사'에게 뜨거운 가슴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것도 말하자면 편견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 있는 모습들, "나도 내 인생에 아직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고 생각해요."라는 서슴없을 뿐만 아니라 거짓도 가식도 없는 발언들은 부러울 만 했다.

그런 녀석이 의학전문대학원 입시를 공부하며 도서관 열람실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말로만 들어도 어둑어둑해지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는 차치하고라도, 그동안 공부한 게 너무 아깝지 않냐니까, "못가서 난린데요 뭘" 하며 피식거린다. 그는 기자를 해볼까 하고 신문사에서 인턴을 했고, 의약을 공부했기에 제약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이념적 성향이 맞는 신문은 박봉이었고, 다른 주요 신문사는 경쟁률이 너무 높았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약 팔러 다니면서, 결심했다고 한다. 전문인이 돼야겠구나. 그냥 의대를 갔었어야 했다며 부모님이 많이 안타까워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이 친구의 고민은 결국 '전문직', '시험', '의사', '돈'이었다. 카이스트 학생들까지 할 필요는 없는 고민들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나를, 친구는 답답해했다. 함께 여행했던 또 다른 카이스트 친구는 회계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단다. "다를 게 있나요, 다 똑같죠." 다를 수 있는 사람들마저 다를 수 없는 현실이 갑자기 더 무겁게 느껴졌다. 너네가 그러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떡하냐.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에 그들만의 특수한 실존적인 고민이 있다는 혐의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 평생 존중받아야 할 두뇌로서 살아온 학생들이, 사회를 알고 현실을 접하면서 겪게 되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더 평범한 이들이 겪는 수준보다 한 차원 더 심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살에 이르지 않는 수준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했겠지.

사는 게 다들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