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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그리운 악마 (이수익) / 꿈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이해수)

koddaggari 2011. 8. 3. 00:43


<그리운 악마>       
이수익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
몰래 나 혼자 찾아드는
외진 골목길 끝, 그 집
불 밝은 창문
그리운 우리 둘 사이
숨막히는 암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눈치 못 채는
비밀 사랑,
둘만이 나눠 마시는 죄의 달디단
축배 끝에
싱그러운 젊은 심장의 피가 뛴다면!

찾아가는 발길의 고통스런 기쁨이
만나면 곧 헤어져야 할 아픔으로
끝내 우리
침묵해야 할 지라도,
숨겨둔 정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
그...
악마 같은 여자





2011년 3월 10일자. 한겨레 신문의 칼럼 "유레카"에서 발견한 두 개의시를 이제서야 갈무리합니다.
한국 외교관들이 상하이 현지의 영향력있는 여성을 사이에 두고 벌인 삼각관계,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을 주제로 하는 글인데,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꽤 떠들썩 했었는데 이젠 별로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주제가 아니더라도 두 개의 시를 함께 읽을 때 생기는 대비, 여백의 의미가 좋습니다.





<꿈 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      이해수

세상에다 신발을 벗어놓고 꿈속에 숨겨둔 정부를 만나러 간다.
혼자만 알고 있는 주문을 외어야 열리는,
눈 감아야만 볼 수 있는 꿈 속에 정부를 만나러 간다.
온 세상이 잠이 들 때를 기다리다가 세상이 잠이 드는 찰나 꿈 속으로 숨어 들어간다.
밤이면 밤마나 찾아가 둘만의 심장을 대펴 줄 이야기를 쑥덕거리다가,
몰래몰래 독주처럼 마시는 뜨거운 사랑.
세상이 눈뜨기 전, 몰래 돌아오는 외진 꿈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 홀로 남겨진다.
오늘은, 아무도 아는 척 할 사람 없는 첫 밤 같은 바닷가에 깍지를 끼고 거닐다가,
밤하늘 외로운 별들이 사람눈 피해 얼싸안는 시간이면
빠알간 불꽃 피워 우리 사랑 흔적 두어 개쯤 새겨 놓을까.
내일은 영화처럼 질주하는 고속도로 끝에서, 심장이 벌겋게 달아오를,
전율처럼 타들어가는 정사를 하고 올거나.
얼굴을 그려놓지 않은, 얼굴이 생각이 나지 않는, 꿈 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
우리 사이 비밀스러운 사랑 암호는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다디단 완전한 범죄.
들킬 걱정 없어서 슬퍼지는 꿈 속의 정부 하나.





아버지, 어머니들의 외도는, 아마도 '열정'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여성편력이나 욕정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인간이 대타자를 통해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결핍된 존재라는 라깡의 설명은 그럴 듯 하지만 왠지 어렵고 또 '인간적으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주는 희열이 아닌가 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올라보면, 할아버지들이 꽤 많습니다. 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다다르기 이틀 전에,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서양인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살아날 희망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등산을 취미로 하는 이들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젊은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아버지, 어머니들의 뜬금없는 외도처럼요. 

산을 내려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늘어진 채로 가만 생각해보니, 조금은 수긍이 가더군요. 산을 오를 때는, 정상에 발을 딛겠다는 목표 하나로 삶이 단순해집니다. 목표가 단순해지면 사방에 흩어진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어 상상치 못한 큰 힘이 생겨납니다. 산을 오른지 이틀, 사흘 쯤 되면 세상의 고민들, 이를테면 '내일 뭘 입을까', '맞다, 그 과제를 해야 하는데', '펀드가 지금 어떻게 됐을라나'하는 생각들이 사라져버리는 거죠. 그런 고민에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으면 단전에 기氣가 모이는 것 같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기분은 정말로 짜릿한 희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성공한 할아버지들의 삶에도 그런 오르막이 있었을 겁니다. 할아버지들은 이제, 산을 다 내려온 셈입니다. 산을 내려와 되돌아보니, 오르막을 오를 때의 희열이 그리운 겁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이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질 법도 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을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이들도 다시 산을 오르고 싶어하는데요.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한 번 더 경험해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꿈을 향해 투신하는 열정적인 삶을. 

사랑도, 충만한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지요.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히말라야를 오르느 것보다는 수월할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들의 외도에는 다양한 쾌감들이 섞여 있겠지만, '열정에의 갈망'도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요. 위의 두 개의 시들도, 숨겨둔 정부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얻고자 합니다. '싱그러운 젊은 피', '벌겋게 달아오른 심장'을 갈망합니다.

두 시의 차이는, 내면의 '열정에의 갈망'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언뜻 자신의 욕망을 '악마'라 규정하는 <그리운 악마> 쪽이 부정적인 듯 싶지만, 가만 보면 반대입니다. <꿈 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의 화자는 끝내 꿈 속에 숨겨둠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악마>의 화자는 악마라 부르면서 그 악마를 그리워합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갈구합니다. 좋은 것은, 평범한 우리들은 이런 두 가지 태도를 다 지니고 있다가 때때로 하나씩 슬쩍 꺼내보고 다시 넣어놓곤 한다는 겁니다. 마음이 슬금슬금 일어날 때는, <꿈 속에 숨겨둔 정부 하나>를 떠올리며 잠시 슬퍼하고 말지만, 달이 꽉 차 마음이 더욱 요동칠 때는 <그리운 악마>를 애타게 찾아보기도 합니다. 내면에 두 마음이 뒤섞여 있듯이, 두 개의 시를 함께 읽을 때 생기는 여백의 의미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