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따까리들 (단상)
사소한 미친 짓
koddaggari
2011. 8. 4. 15:15
토익 학원에서 매일같이 숙제로 유인물을 나눠준다. 열댓장 분량의 문제들로 강의실 입구에 비치돼 있고 학생들이 하나씩 집어들고 간다. 어제는 유인물을 집어드니 스테플러가 왼쪽 하단에 집혀져 있었다. 다른 유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상단이 보통인데... 선생님은 알바생에게 부탁했던 건데, 어째서 이렇게 죄다 잘못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문제를 푸는데, 짜증이 났다. 스테플러가 잡힌 쪽을 집고 페이지를 넘기니까 자꾸만 앞 페이지가 나왔다. 열 장쯤 같은 짓을 반복했다. 열 한장 째, 펜을 놓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상단이든 하단이든 왼쪽에 집혀 있으니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건 같은데, 내 손은 왜 자꾸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걸까. 아하, 양면 인쇄가 돼 있는 유인물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겨 뒷면을 보게 된다. 이 때 스테플러가 왼쪽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 때 다음 페이지를 보기 위해서는 위 아래로 넘겨야 한다. 몸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무의식중에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구나. 습관 무서운 줄은 알았지만.
다시 펜을 들고 문제를 풀었다. 이제 햇갈리지 않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데, 페이지가 왼쪽 하단으로 넘어가는 생경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알바생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짓을 했을까? 단순히 실수였을까? 스무 개의 유인물에 일관적으로 같은 실수를? 가만, 혹시 이 알바생도 왼쪽 하단에 스테플러를 찍는 생경한 기분을 즐긴 것은 아닐까? 사소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확실히 미묘한 일탈의 기분이 느껴진다. 갑자기 네이버 SNS인 '미투데이'의 광고가 생각났다. "오늘 당신의 미친 짓은?" 그 알바생은 혹시, 그 날 미투데이에 "나 오늘 학원에서 나눠주는 모든 유인물에 스테플러를 왼쪽 하단에 찍어놨어요 ㅎㅎ"라고 올린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 증거도 없이 괜히 그랬을 것 같은 기분에 내심 흐뭇해졌다.
괜찮은 놀이가 아닌가. 하루에 사소한 미친 짓 하나쯤. 재밌잖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집에 돌아와 문제를 푸는데, 짜증이 났다. 스테플러가 잡힌 쪽을 집고 페이지를 넘기니까 자꾸만 앞 페이지가 나왔다. 열 장쯤 같은 짓을 반복했다. 열 한장 째, 펜을 놓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상단이든 하단이든 왼쪽에 집혀 있으니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건 같은데, 내 손은 왜 자꾸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 걸까. 아하, 양면 인쇄가 돼 있는 유인물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겨 뒷면을 보게 된다. 이 때 스테플러가 왼쪽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 때 다음 페이지를 보기 위해서는 위 아래로 넘겨야 한다. 몸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무의식중에 아래에서 위로 넘기는구나. 습관 무서운 줄은 알았지만.
다시 펜을 들고 문제를 풀었다. 이제 햇갈리지 않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데, 페이지가 왼쪽 하단으로 넘어가는 생경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알바생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짓을 했을까? 단순히 실수였을까? 스무 개의 유인물에 일관적으로 같은 실수를? 가만, 혹시 이 알바생도 왼쪽 하단에 스테플러를 찍는 생경한 기분을 즐긴 것은 아닐까? 사소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확실히 미묘한 일탈의 기분이 느껴진다. 갑자기 네이버 SNS인 '미투데이'의 광고가 생각났다. "오늘 당신의 미친 짓은?" 그 알바생은 혹시, 그 날 미투데이에 "나 오늘 학원에서 나눠주는 모든 유인물에 스테플러를 왼쪽 하단에 찍어놨어요 ㅎㅎ"라고 올린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 증거도 없이 괜히 그랬을 것 같은 기분에 내심 흐뭇해졌다.
괜찮은 놀이가 아닌가. 하루에 사소한 미친 짓 하나쯤. 재밌잖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