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길 위에 있다. (여행)

호도협. 중국. 2010년 4월.

koddaggari 2011. 9. 4. 03:45





































































3일 간의 트레킹 코스. 호도협. 옥룡설산.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목. 호랑이가 건너다닌 협곡이라는 뜻.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다. 사진으로는 그 장관이 표현되지 않는다. 숭고미,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크고 웅장한 것을 맞닥드렸을 때 느껴지는 아름다움. 그 말뜻을 좀체 실감할 수 없었던 오밀조밀한 땅의 아들은, 그 느낌이 가슴 벅차오르는 느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눈을 열어 보는 것만으로 그 큰 것이 가슴 속에 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초록빛 협곡이 조금씩 드러나고 설산이 언뜻언뜻 비칠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이려는지 온 몸의 구멍들이 평수를 늘린다. 고개가 서서히 뒤로 젖혀지면서 눈, 코, 입이 차츰 벌어지고 목구멍에서 바람이 새어나온다. 숭고미를 체험하는 건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밤새 보고 있으면 세포 구멍까지 다 열려버릴 것 같은.

숭고미와는 아무 관계없이, 앞서 가던 커플이 있었다. 같이 오밀조밀한 땅에서 살던 사이라 반갑게 인사는 해도, 둘 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듯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다. 둘 만의 시간이 그리워 나는 스토커처럼 자꾸만 그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이 커플은, 특히 여자분은 마치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매순간이 새로운 것처럼, 조금씩 지루해져가는 산행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지가 주는 느낌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사랑하는 이와 새로운 상황에 처하는 매순간이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표현하고 또 표현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과장된 만족감의 표현이었는데, 사랑에 빠진 당사자는 모르는 건지 모른 척 하는 건지 어쨌든 보기 좋았다. 그래도 닭살 커플이 주는 거북한 느낌은 묘하게 피해가고 있었는데, 장시간 살펴본 입장에서 내린 결론은, 서로가 각자의 애정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애정을 받아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귀엽게, 사랑스럽게 과잉포장된 만족감에 무뚝뚝한 외모의 남자분도 기분좋아 보였고, 남자분은 거기다 또다른 과잉표현을 덧대기보다는 가만히 음미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만족감아 두배, 세배 부풀려지고 있다고, 멀리서 보고 있는 나도 알 수 있었다. 귀여운 손짓, 표정과 함께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어. 너무 멋진 곳이다 여기. 트레킹하기 참 잘했어.”와 같은 과장된 만족감의 표현들이 재료가 되어서, “우리 대학교 때 생각나?”로 기분좋은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이야기를 나누며 바라보고 웃고 안아주었다. 그렇게 행복이 풍선 부풀어오르듯 커지는 것이 보였다.

숭고미가 기왕 나왔기 때문에 갖다붙여보자면, 그들에게는 우아미가 있었다. 흔히 '조화'로 설명되는 우아미는, 내 생각에는 대충 이런 거다. 나는 어떤 이를 만나기 전에는, '같은 차를 마셔도 예쁜 컵에 따라 마실 때 훨씬 더 맛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종이컵이냐 크리스탈 컵이냐에 관계없이 음료의 맛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는 쪽에 마음이 끌린다면 아쉽게도 당신은 우아미가 없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릇은 내용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사람은 내용물만 따로 경험할 수 없다, 경험은 항상 '형식+내용'의 전체로서 주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기 위해 터무니없이 커다란 그릇을 준비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는 마음을 부풀려갔다, 우아하게.

비장미, 골계미가 빠져서 섭섭하니까 마구 갖다붙여보자. 오골계 백숙!!! 산행 출발하기 전에 그날 밤 묶을 객잔에 연락해 오골계 백숙을 주문한다. 그럼 그 때부터 주인 아주머니는 오골계를 잡아 하루종일 푸욱 고운다. 녹초가 돼 저녁무렵 객잔에 도착하면, 아, 그 오골계 백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백숙은 골계미를 설명하기 위해 억측스럽게 끌어들인 '조금 맛있을 뿐인' 백숙이 아니다. 굳이 골계미로 분류함은 그 외관이 다소 기괴하기 때문이다. 우선 보통의 통닭 크기의 1.8배 정도 되는 크기에 껍질의 색이 오묘하다. 흙색이라고 하기에는 꽤 운치있는 색감이다. 그 야들야들하면서도 쫄깃쫄깃한 믿을 수 없는 육질의 살코기를 쏘옥 발라내면, 뼈가 검은 색이다. 수북하게 쌓인 검은 뼈다귀들을 보니 악마를 먹은 느낌이다, 게다가 그 맛은 정말 악마의 맛이라고 할 만하기도 했거니와. 맛으로 따지자면 내 생애 최고의 닭백숙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어릴 적 드셨다고 자랑해오던, 그렇게 전설로만 존재하던 그 맛, 그 시골의 맛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직접 경험한 느낌이었다. 악마와 같은 모양새에 천사의 속살 같은 맛, 그 부조화는 골계미라 할 만하지 않은지.

비장한 각오로 비장미는 없다. 뭐 갖다붙이려면 말 만들기는 어렵지 않으나, 비장미란 그런 것이다. 좌절. 가장 깊고 처절한 좌절의 한 가운데서 슬픔을 장식하는 한 송이 붉은 장미 꽃과 같은 것이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