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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따까리들 (단상)

헤어져 각자의 운명을.

사람마다 느껴지는 기운이 다른데, 대개는 느껴지지 않을만큼 미미하다. 해로운 기운은 그나마 쉽게 알아본다. 사람이란 게 그만큼 약하고 민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기운을 만나기는, 적어도 나는, 어렵다. 형편없는 선구안, 무딘 감성 탓일지도. 그래도 이 친구에게서는 뭉퉁하고 뭉클하면서도 바위처럼 밀리지 않는 기운을 느꼈다. 그가 있는 자리는, 알게 모르게 그 부드럽고 묵직한 기운이 점점 차오른다.

자신의 길로 한 발 한 발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자기의 운명을 실현해가는, 의지의 한 걸음 두 걸음이 나는 인상깊었다. 그 행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창조적인 일들을 만들어냈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과의 사적인 친분은 물론 국내 유명한 철학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거나, 진지하고도 깊이 관심을 두고 철학하여 학부생 수준으로는 접하기 힘든 수준의 깊이있는 독서를 했다. 결국 그 체계적인 공부를 인정받아 세계적인 대학에서 세계적인 석학을 스승으로 공부하게 됐다. 유학해서 석사, 박사 학위를 얻는 길을 나도 꿈꾸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친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걸음으로 길을 내고 있었다. 친구는 '정치 (공동체)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면, 개개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건 정말로 감탄할 만한 주제였다. 이런 기운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아내지 않겠는가, 그런 기분으로 나도 함께 반짝반짝했다.

나는 로티, 셀라스, 번스타인...을 알지 못했고, 대화가 깊어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친구가 벌써 이 길로 많이 가버렸구나, 하고 느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인 줄만 알았더니, 또 하나의 헤어짐이 더 있었던 게다. 그는 그의 길로 가고,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철학해야겠다, 우리는 그 갈림길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제대로된 뒷북으로 니체에 꽂혔는데, 니체는 로티, 셀라스, 번스타인보다 세련된 맛이 떨어졌지만 크게 부끄럽지 않다. 첨단을 달리는 깜냥은 못돼도, 내 삶과 직접 버무려내는 것이 내 방식이다. 그렇게 내 코따까리가 아니된 채로 나는 조급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그는 그만의, 나는 나만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각자의 운명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내게도 남들이 느낄 수 있을 만한, 기운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차돌같이 단단한 느낌은 결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남들의 기운에 쉬 흩어지지 않을 만큼의 힘이 있는 기운일까. 내 삶의 행보에는 강한 의지가 배어있을까, 내 걸음 하나하나가 운명을 실현해가고 있을까, 그저 남들의 꽁무늬를 쫓고 있는 걸까. 이것은 온전한 내 길인가, 내 운명인가. 내 행보가 무엇을 바꾸어가고 있나.

존경할만한 친구를 만나는 일은 못난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조금은 애닯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를 한동안 만날 수 없는 것보다 씁쓸하지는 않구나.


201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