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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따까리들 (단상)

이방인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 때문에 서울이 떠들썩하네요. 일요일 오후의 단잠을, 주민투표 참가운동본부에서 보낸 문자 때문에 날려버렸습니다. 비겁한 투표 방해는 세금폭탄 되어 돌아온다네요. 잠결에 어디선가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인 줄 알고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구요. 투표에 참가할 바에야 잠이나 자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너무 이방인처럼 구는 건가요?

한국영화 <고지전>, <풍산개>가 참 볼만한데, 보셨나요? 이 영화 속에는 ‘이방인’이 인상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풍산개>에서 윤계상은 대사 한 마디없이 ‘이방인’을 열연하고 있어요.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궁금합니다. 이 놈이 어느 편인지.... 남이냐 북이냐. 적도 아군도 아니다, 라는 사실 때문에 양쪽 모두가 그를 이용해 먹지만 나중에, 이 이방인은 양쪽 모두를 징벌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남과 북을 좁은 방구석에 몰아넣고 무기를 하나씩 넣어주는 거였어요. 마치 <고지전>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미군이 ‘공습’으로 “남북한의 국군과 인민군은 들으세요. 전투, 요-시-땅 입니다!”를 외치는 것처럼요.

이방인은, 모순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이방인으로 남습니다. 세계는 모순 덩어리다, ‘모순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여기저기 참 많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단면 단면이 모두 모순된 단면을 갖는, 세계란 바로 그 모순 자체다, 라고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의 모순에 발을 담그라고 강요받습니다. 반대쪽보다 이 쪽이 딱히 옳다고 할 수 없는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순에 열정적으로 참여합니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방인’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는 것이 유일한 이유일 겁니다.

‘동조 효과’를 다루는 심리 실험들이 많죠. 명확히 답을 알고 있어도, 다른 모든 이들이 아니라고 하면 자신의 답을 포기하고 맙니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자신을 안정적으로 위치시키려는 유전적 특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바로 그런 것들을 거부하기 때문에 ‘관계’에 포함되지 못하고 겉돕니다. 사회는 ‘이방인’들을 격리수용 합니다. 정신병원에, 감옥에, 혹은 ‘죽음’에. 카뮈의 이방인도 결국 죽음을 택합니다. 간단한 이유였어요. 세계의 모순에는 결코 참여할 마음이 안 생겼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사색이었다기보다는 그냥 짜장면도 짬뽕도 둘 다 별로 안 먹고 싶은 마음 정도였습니다.

내 보기엔 ‘무상급식 찬성이냐 반대냐’는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의 문제만큼이나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알고보면 695억원 차이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은 세금폭탄이니 8조원이니 떠들어대지만요. 정말 ‘이방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요. 헌데 이번 투표는 참가하지 않는 것만으로 ‘찬성’에 손을 들어주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이방인으로 살기도 힘듭니다. 지금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이방인들이 아마도 이용도구로 보일 겁니다. ‘찬성표’나 ‘반대표’로 이용해먹고 싶겠죠. 말 한마디 없는 돈만 주면 다 하는 윤계상처럼요. 하지만 그들을 화나게 하지 마세요. 언제 돌변할 지 모릅니다, 그들을 징벌하는 큰 힘으로 말이죠.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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