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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따까리들 (단상)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언제까지고 지칠 줄 모르고 응시했다

 

 거울 앞에 선다고 내가 보일 리 없다. 아무도 모르게 입을 아주 살짝 조그맣게 하고 있다거나 무의식적으로 나만 보기에 좋은 각도로 얼굴을 돌리니까. 좋은 각도라는 건 사실 단점을 외면하는 거다. 몸에 힘을 주고 있는 채로, 모르는 척 뻔뻔하게, '뭐야? 생각만큼은 뚱뚱하지 않잖아?'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만다. 마음 속에서 부지런히 판타지가 피어올라 눈 앞을 가리는 통에 무엇인가 있다한들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에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은 콤플렉스 또는 판타지라고 해야 더 적합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다. 그런 것들도 따지고 보면 나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다지 '나'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거울을 보자면 고작 10초를 견뎌내기가 쉽지 않은데, 그게 바로 자기기만의 증거다. 곧이어 드러날 진실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잘 알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피해내는 거닷.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그런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닥 잘생기지도 않았고 몸이 근육갑옷같지도 않은 입장에서 하는 말이긴 하다. 잘생기고 몸좋으면 또 그런데로 그 쪽으로 깊숙히 빠져들어 자아도취를 비춰내고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돼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어쨌든, 신체적인 것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데, 우리의 영혼도 사실은 거울 앞에서 조금 더 잘 보이니까 말이다. 영혼을 보자고 거울 앞에 서기도 참 어색한 일인데다, 어쩌다 흘끔 영혼이 보일라쳐도 거울과 나 사이에 뿌려진 콤플렉스나 판타지, 자아도취의 해상도가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좋으니까,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거울 앞에서 시선을 거둔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언제까지고 지칠 줄 모르고 응시했다. 거대한 지진이나 엄청난 홍수를 만난 저 머나먼 지역의 비참한 재난을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 영상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처럼."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없는다자키쓰쿠루와그가순례를떠난해. 민음사. 57p. -


 귀신이 되지 않고서도 살아있는 진짜 '나'를 맞닥들이는 그런 생경한 경험이 있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거대한 상실감을 맞닥드릴 때, 한껏 작아진 자신을 마치 자신이 아닌 것처럼 바라보게 된다, 마치 저 다자키 쓰쿠루처럼. 상실감은 우주만큼 거대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또한 완전한 나의 일부라고 밖에 할 수 없어, 나는 마치 우주가 되어 아직 우주가 되지 못한 조그마한 나를 바라보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처한다. 첫사랑과 이별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렇게 거울도 없이 나를 한동안 오랫동안 바라보았더랬다. 깊은 슬픔, 돌이킬 수 없는 이별, 좌절과 회생불능. 이런 놈들 앞에서야 겨우 '나'를 발견하고 바라본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는 '나'는 항상 한없이 작고 안쓰럽고 가여운 녀석이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대면하는 일은 신의 영역.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는 다른 사람을 찾는다. 꽤 영리하지 않나? 벌거벗은 채 아무런 '척'도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사랑하는 그/그녀와 누워 뒹굴 때, 아담과 이브처럼, 그럴 때 어딘가에 진짜 나란 놈이 비춰지고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내 스스로는 보지 못한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오직 내 앞의 그/그녀에게만 허락된다. 그/그녀가 보느냐 마느냐는 여전히 다른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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