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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따까리들 (단상)

가면

 고아원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희생자는 11살짜리 고아 여자아이. CCTV에 토막 살해 현장이 그대로 담겼다. 하지만 범인은 태연하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CCTV의 위치를 알고 있다. 범인은 절차가 옮겨질 때마다 한 번씩 CCTV를 바라본다. 가면은 울고 있다. 울고 있는 표정의 각시탈.

 수사를 맡은 형사는 이미 마음 속에 용의자를 두고 있다. A씨는 고아원에서 5년째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학생. A씨는 주말마다 캐릭터 코스튬을 입고 나타나 아이들과 하루종일 놀아주는 일을 한다. 

 문제는 A씨의 인상이 너무 좋다는데 있다. A씨는 기본적으로 웃는 얼굴에 처진 눈, 동글동글한 인상이라 누가봐도 ‘좋은 사람’이다. 특히 눈이 작고 길어서 웃을 때 눈썹과 함께 호를 그리며 아래로 처지는 눈웃음은 귀엽기까지 하다. 

 형사가 A를 처음 만난 것은, 수사가 도무지 풀리지 않아 짜증이 난 일주일 째 되던 주말이었다. A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코스튬을 입고 고아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날씨는 덥고 수사는 풀리지 않고, 아침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형사는 A의 발랄한 춤과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 거친 성격에 깡패 기질이 있는 형사는 A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불 좀 빌립시다”
 뽀로로 코스튬을 입고 있는 A에게 라이터가 있을 리 없고, 있어도 그것을 건네주려면 코스튬을 벗었다가 다시 입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A는 고아원 선생님에게 라이터를 빌려와 형사에게 갖다주는데, 형사는 이번엔 담배피는 뽀로로가 보고 싶다며, A에게 담배를 물린다. 담배를 피지 못하는 A는 기침을 하느라 뽀로로 얼굴을 벗는다. 그런데 기침을 하는 그 순간에도 A의 얼굴은 마치 웃는 것만 같다. 형사는 직감적으로 그 얼굴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A에 대한 뒷조사를 마쳤지만, 혐의를 잡을 길이 없다. 알리바이가 없긴 하지만, A의 평판이 너무 좋았다. 사람들은 A의 찡그린 표정조차 본 적이 없다. A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하지만 대체로 웃는 표정이 아니라, 그의 모든 표정이 웃는 표정이라는 것을, 형사는 알게 된다. A의 다른 표정을 본 사람이 없다. 아직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아원에서 A는 항상 코스튬을 입고 있으니까, 그의 맨얼굴을 오래도록 본 사람은 많지 않다. 

 형사는 어떻게든 가면 속 A의 맨얼굴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A의 다른 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A를 괴롭혔지만 A의 감정을 움직일 수 없었다. A의 다른 표정을 볼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가면 속에서 뿐이라는 것을 형사는 직감하게 된다. 하지만 A의 가면 속을 어떻게 훔쳐 볼 것인가. 방법이 없다. 가면 속의 표정, 그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형사를 섬뜩하게 했다. 

 A와 11살 가량의 아이를 한 밀폐된 공간에 두고, A의 뇌파를 측정했다. 그리고 A에게 가면을 씌운 후 다시 뇌파를 측정했다. 뇌파실험은 A가 범인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A를 살인범으로 인정할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몇 건의 고아 살해 사건이 더 일어나고, 3년 후 A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형사는 A의 가면 속 얼굴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것은 아마 두 눈을 부릅뜨고 사악하게 눈빛을 반짝이며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짓는, 지옥의 악귀와도 같은 모습이리라. 형사는 A가 범인이라는 것보다, 그 얼굴을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순간에도 A는 웃는 얼굴이었다.

 A는 교도소에서 자살했다. 그는 몰래 밀반입한 각시탈을 쓰고 목을 매었다.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한 형사는 떨리는 마음으로 각시탈을 벗겼다. 그 속에서 A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나는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지루할 뿐이다. 봉사를 하는 것도, 아이를 살해하는 것도, 교도소 안에서 겪는 모든 일들도 내겐 아무 의미가 없다. 남은 것은 죽어보는 것뿐이다.”

이런 내용의 유서와, 네 개의 가면이 A의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는 늘 가면 주변에서 살고 죽었다. A가 세상에서 가지고 싶었던 것은 단지 표정.... 가면만이 그에게 표정을 주었을 것이다.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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