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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따까리들 (단상)

서울역에 내렸다


 서울역에 내렸다. 장병 휴가는 짧다 못해 허무하다. 개미 새끼들처럼 방향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화장실로 뛰어가 속을 개워냈다. 서울역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씹어 먹으며 지나가는 여자를 구경한다.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질질 끄는 것밖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 시간이 닥쳐올수록, 휴가를 맞이해 정성껏 닦은 군화는 바닥과의 마찰력을 높인다. 

 서울역에 내렸다. 분주히 짐을 챙겨 움직이는 승객들의 활기, 세 시간만에 온 몸으로 받아내는 햇살, 힘이 난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차례를 기다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가 답답할 정도다. 계단으로 뛰어 오른다. 가슴이 벅찬 만큼 심장을 뛰게 한다, 조금은 살 것 같다. 지금 여기서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서울, 꿈을 타고 날아서가 아니라면 이 곳을 떠날 일은 없다.

 서울역에 내렸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는 고향을 등지고, 또 다시 이 곳 서울역이다. 무슨 영화를 보자고 외지에서 홀로 외로이 아둥바둥 꼼지락대고 있을까. 다 때려치워 버리고 돌아갈까, 내 가족, 내 친구, 내 사랑, 내 추억이 있는 곳으로, 나의 고향으로. 차라리 이렇게 가깝지나 말지. 모두 한 곳을 향해 오가지만 말은 커녕 눈길도 섞지 않는 사람들, 서울역에서는 모두가 외로워 보인다.

 서울역에 내렸다. 사랑하는 내 모든 것이 있는 곳. 아, 일탈은 얼마나 길었던가. 일상은 얼마나 그리웠던가.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일상의 가치’를 찾았다. 사람은 늘, 없는 것을 찾지 않는가. 여행에는 여러 이야기, 다양한 사람들과의 세상의 굴레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관계맺음이 있다. 거침없이 꿈을 말하고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매울 수 없는 삶의 알맹이가 빠졌다. 일상이 없다. 여행은 박제된 진실. 일상에서는 흔해빠져서 알아보지 못하는 진짜 알맹이, 짜증나고 힘들고 땀냄새 풀풀 나는 가운데 맛보는 진짜배기가 없다.

 서울역에 내렸다. 많이도 변했다. 내 살갗은 이토록 쪼그라들었는데, 서울역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슬픈 일이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네 놈은 왜 늙지 않는거냐’ 생각하며 역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기억을 되살려 흔적을 찾아보지만 애처롭기만 하다. 서울역, 늙은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 나는 오늘 서울역마저 잃었다. 괜히 나왔나.. 아이를 보러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꿈을 품고 이 곳에 내렸을 아이, 홀로 외로웠을 아이, 그래도 결국은 이 곳을 사랑했을 내 아이. 서울 어디든 아직은 나 혼자 찾아갈 수 있지만 마중 나온다는 아이를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했던 것보다 일찍 기차에 올랐다. 이 곳에 앉아 내 지난 추억과 함께 내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다섯 좌석의 벤치 위에 연령별로 다섯 명의 남자가 앉아 있다. 복귀를 아쉬워하는 군인, 꿈에 부푼 청년, 외로워 보이는 직장인, 여행 가방을 짊어진 아저씨, 그리고 이 모두를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마중나온 아이는, 이 장면에 묘한 감동을 느끼고 몰래 셔터를 눌렀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아버지요, 곧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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