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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길 위에 있다. (여행)

카레와 보이차. 쿤밍. 중국. 2010년 4월.


















 호도협에서 만나 동행했던 아버님, 어머님이 식사에 초대했다. 초대장이 날아온 건 아니고, 쿤밍에 왔다고 굳이 전화를 드렸더랬다, 초대해달라는 반강요나 다름없었다. 일을 저돌적으로 추진한 친구에게 "해드린 게 뭐가 있다고 밥을 얻어먹으러 가냐?"고 했더니, "우리는 여행자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내가 도움을 받아도 민망하지 않을 수 있는 처량한 신세로 느껴졌다.

 카레는 엄마 손맛을 그대로 담고 있어 마음이 짠했고, 우리 엄마라도 젊은 친구들 여럿의 점심을 대접하는 상황에 카레를 선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남편 자랑 하시는 어머님. 부끄러워하시는 아버님. 어머님의 거리낌없는 깔깔 웃음. 진득한 인생론을 꺼내놓는 아버님. 모두를 흥분하게 만든 게스트하우스 사장 뒷담화. 대화가 끊길 때 쯤 비어있는 찻잔. 정성스레 찻잎을 우려내는 아버님 손길. 기가 막히는 보이차맛. 살랑살랑 산들바람.   
 

 "여행에서 만난 좋은 인연인데 별거 해줄 게 없네, 밥들이나 많이들 먹고가."

 우리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여행에서 만난 '좋은 인연'이기 때문에. 해준 것 해줄 수 있는 것 없이도 밥을 얻어먹으러 갈 수 있다. 함께한 여행은 단순한 만남을 '좋은 인연'으로 만든다. 서로가 여행자로서 만나면, 2-3일만 함께 보내도, 다음에 언제든 손익 계산 없이 서로를 반길 수 있다. 아버님-어머님도 여행자로서 우리 젊은이들도 여행자로서 만났고, 호도협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주고 받았고, 산을 오르며 귤과 커피를 나눠먹고, 오골계 백숙의 맛에 감탄하는 서로를 쳐다보기도 했고,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두 분의 사진도 찍어드리곤 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웠던 시간만큼 그 곳에 함께 있었던 우리 마음도 함께 아름다워져, 그것만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건가. 나라도 밥 한끼 아끼기 위해, 두 세 시간 바쁘기 때문에, 여행의 추억들을 찜찜하게 접어놓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자들끼리 주고받은 것들은 별 것 아닌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되곤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값지다. 어째서 나는 작은 마음으로, 좋은 인연들의 좋은 만남, 좋은 마무리를 불편하게 느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