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답은 길 위에 있다. (여행)

카트만두. 네팔. 2010년 4월.

 

 #1. 머릿속이 온통 '여행'에 사로잡혀있었다. '떠돎'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찾아 헤맸다. 몸은 돌아다니는데, 마음은 꼼짝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떠돎'이라는 말에는 벌써부터 목적없음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건 여행이 아니다, 는 식의 강박이야말로 여행답지 못하다,는 식의 돌림노래를 이어가면서 생각은 한 자리에 가만있었다.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 나는 왜 떠돌아다니고 있나?!" 의미없음에서 기어코 의미를 일구어내려는 삽질, 끊임없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소용없어, 그래도 넌 젊어!"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의미'는 도중에 없다. 끝이 나야 발생한다. 여행의 의미는 여행이 끝난 시점에야 겨우 형태를 갖추어가기 시작한다. 삽질하다가 걸려 나오는 돌부리같은 게 아니라, 무한삽질로 다져진 땅에서 발아한 새싹 같은 거지, 말하자면. 

  그 여행이 끝난 지 3년도 넘었다. 쿤밍까지의 기록들은 여행이 끝난 직후에 씌어졌고, 삽질로 맨땅에서 일구어낸 돌부리같다. 여행 이후 3년의 시간은, 적절한 햇볕과 땅의 양분으로 그 여행의 의미들을 풍성하게 키워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방치한 채 다 죽여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생기니까 그게 괜히 궁금하다.

  카트만두 즈음해서, 내 삽질은 절정을 향해 진격중이었다. 실체가 없는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헤맸고 돌부리라도 보일라치면 쳐들고 숭배했다. 삽질하느라 목적없이 떠돌지 못했고,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사람'인데) 을 놓쳤다. 가장 여행답지 못했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