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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좋아하세요? (리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2010.






리즈(줄리아 로버츠)는, 그리고 우리들은 어디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스스로에게 무책임하게 사는 것일까.

이탈리아 인들은 미국인들의 노는 방식을 놀려댄다. 근면·성실이 존중받는 사회, 미국인들은 경쟁적으로 일하고 일에서 성취감을 얻는다. 일에의 몰두를 강요하는 미국 사회에서 사람은 일에 묶여 자기를 돌볼 수 없다. 경쟁에 뒤처지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 같다. 자기를 바친 대가로 생존을 얻지만 삶은 어디에도 없다. 반면 이탈리아 인들은 ‘빈둥거림의 미덕’을 소중히 생각한다. 일해서 얻은 자격으로 노는 것이 아니라 놀기 위해서 일한다. 일하느라 삶의 즐거움들을 놓치지 않는다. 이탈리아 인들은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언어, 빈둥거림의 미덕으로 하루하루 즐거움 속에서 자기를 확인한다.


전형화된 삶의 방식들도 자기를 빼앗아간다. 그러한 전형 중에는 여행을 사랑해서 생의 일정 부분을 여행으로 채우고자 하는 사람이 가질만한 것은 없다. 남편은 리즈가 자신의 아내로서 살기를 바란다. 출산 역시 전형적으로 강요당하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결혼생활(의 갑갑함)도 힘겨운 리즈에게 사회는 출산을 강요한다. 리즈의 친구는 아이를 갖는 일은 평생 지우지 못할 문신을 새기는 일이라고 조언하면서도 스스로는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에 굴복한 모습이다. 리즈에게 출산은 여행을 포기하고, 자기를 읽어버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도, 사회는 더 늦기 전에 아기를 가져야 한다고 잔소리한다. 이혼 과정에서 리즈는 모든 것을 내놓아야 했다. 결혼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택하는 여성에게 사회는 경제적인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우리 관계가 끔찍해도 그냥 인정하고 살자. 싸우고,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떨어질 수 없으니까 같이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데이비드는 낭만을 가장해 리즈를 전형화된 삶 안에 묶어두려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만나는 대부분의 순간에 행복하지 않는데도 떨어질 수 없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사랑의 행복한 결과가 아니라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데이비드가 말하는 사랑은, 리즈를 이같은 모순 속에 가두고 있는 틀,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옆에 옴짝달싹못하게 붙여두려는 사회 제도, 결혼의 메타포다.


리즈의 명상을 마지막까지 방해하는 자기의식, 그것은 남편과 데이비드에 대한 죄의식이다. 그런 죄의식을 떨쳐버리라고 깨우쳐준 리처드(텍사스에서 온)는 결혼제도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이다. 결혼에 실패한 두 사람, 리즈와 리처드는 인도 소녀 툴시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그녀를 축복해준다. 그러면서 그들은 결혼 생활이 실패하기 이전에 각자의 배우자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들을 실패하게 만든 것은 결혼 제도이지, 자신이 아니다. 죄의식을 사회로 밀어내고 스스로를 용서하고서야 리즈는 평온을 얻는다.




 





리즈의 자기 찾기 여행은 중년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사회·제도의 암묵적인 강요로부터, 사회에 의해 전형화된 ‘남들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이다. 이탈리아에서 쾌락의 향유를 통해, 인도에서 명상(신과의 대화)를 통해 리즈의 자기 찾기는 꽤나 성공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쾌락과 명상, 양자의 균형을 찾고자 한다. 명상 생활을 유지하는 한편 펠리페를 통한 쾌락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간의 균형잡힌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의 미소에는 찜찜한 기색이 있다.

자기 상실과 자기 통제 간의 갈등 때문이다. 사랑과 균형 간의 갈등 때문이다. 균형을 추구하는 삶은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펠리페와의 사랑도 데이비드와의 사랑처럼 삶의 균형을 깨버리고 자기를 앗아갈 텐데...' 라고 생각하며 리즈는 두렵다. 스승은 ‘사랑에 빠져 가끔씩 균형을 잃는 것이 크게 보았을 때 균형잡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깨우쳐주고.... 리즈는 삶 전체의 균형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뭐야? 그럼 결국 처음으로 돌아간 건가? 리즈는 사랑으로 자기를 잃고 다시 먹고 다시 기도해서 자기를 되찾는 과정을 반복해야 할까?

데이비드와 펠리페의 결정적 차이는, 리즈가 그들을 ‘자기’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사랑은 자기 상실의 과정인 동시에 사랑하는 이와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사랑할 때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상대를 얻는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바쳐진 내 사랑을 흡수해버리고, '나'를 흩어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만다. 다른 어떤 사람은 그에게 바쳐진 내 사랑을 나 대신 잘 간직해 깨지지 않게, 더욱 더 나답게 빛나도록 닦고 또 닦고, 정성을 다해 가꾼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나를 버림으로써 더 훌륭한 나를 얻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해서 더 아름다운 나를 얻는다. 리즈처럼 평생 여행을 즐기는 타고난 여행가인데다가 언어의 아름다움을 아는, 게다가 이혼 경험까지 있는 펠리페는 전형의 삶이 아닌 리즈의 삶 속에 있다. 펠리페 역시 리즈의 자기 통제력을 잃게 하지만 대신에 그녀는 펠리페를 얻고 펠리페는 옆에 더 리즈다운 리즈를 끼고 있다. 결국 펠리페를 사랑함으로써 버린 자기는 펠리페에 의해 되돌아온다.










펠리페라는 백마 탄 왕자님으로부터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해피엔딩은 흡사 신데렐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기분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결단력있게 사회를 뛰쳐나온 주체적 여성을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머무르게 한다. 그녀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고 포용하며 섹시한데다가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펠리페와의 만남은 지나치게 느닷없어 운명적이기까지 하다. 사랑, 그 운명적인 것을 우리는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유일한 해답인가. 이 주체적 여성이 할 수 있는 결단이 구애하는 펠리페에게 용기내어 OK하는 것이라니.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해나가기를 갈망하는 능력있는 여성들이, 끝끝내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나. 사랑 외에 다른 답은 없나? 섬으로 가는 보트를 타고 리즈는 행복하게 웃고 있지만, 리즈에게 자신을 대입하고 열심히 답을 찾아가던 커리어 우먼들의 마음은 마냥 행복하지 못하다. “결국 그거였어?”와 같은 반응은 펠리페와의 사랑이 리즈의 자기를 회복시켜주는 ‘이상적 사랑’인 것과 무관하다. “누가 그걸 몰라?” 사랑 말고 다른 답은 정말 없는거야? 영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회가 전형적으로 요구하는 삶 속에서 자기를 잃고 사랑마저 잃어버린 30대 중반의 여성이 자기를 잃음으로써 자기를 얻는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자유분방한 여행가들의 사랑은 사회 전형이 요구하는 삶 속에서는 뿌리내릴 수 없다. 하지만 사회의 틀을 박차고 나온 리즈를 끌어안는 ‘고귀한 남자의 품’은 그녀를 언젠가는 다시, 갑갑하게 할 것만 같다. 결국에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앞에 주저앉고마는 결말을 통해 볼 때, 오늘날의 주체적 여성들이 사회 바깥에서 쟁취하고자 하는 ‘어떤 대안적인 삶’은 아직 구체성을 띠지 못하고 신데렐라적 환상에 머무르고 있다.


 

2011년 4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감독 라이언 머피 (2010 / 미국)
출연 줄리아 로버츠,하비에르 바르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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