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면 반드시 어느 정도는 일탈이겠다. 일상과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떠난다. 실제로 여행은 인생과 닮아있어서, 마치 짧게 요약된 인생과도 같아서,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자신의 기나긴 삶에 대한 어떤 함축을 얻기도 한다, 시를 읽고 감동을 받는 것처럼... 짧은 몇개 단어의 배열에서 한번씩 얻게 되는 큰 울림, 강한 인상, 가슴에 와닿는 의미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분명한 것은 시 자체에 녹아 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시인의 삶이었거나, 나의 삶이었거나.. 시는 그저 통로일 뿐이다. 여행도 그저 통로일 뿐이다. 어떤 경로를 통했든 마음으로 얻게 된 어떤 함축, 의미, 인상, 깨달음.. 그런 것들이 모습을 갖추어 드러나는 곳은, 그곳은 결국, 꿈이 아직은 꿈으로서만 있는 곳, 마음을 나눈 사람들이 있는 곳, 나의 매일매일의 삶, 즉 일상이다.
어떤 여행자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찾아 수십년을 헤맨다. 찾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기도 한다. 돌아갈 수 없기도 한다. 그러다가 여행이 곧 삶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여행이 곧 삶이 되는 그런 여행자가 된다. 그 가운데 죽음을 맞기도 한다, 영화에서처럼. 여행에서 진정한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일종의 결벽증이 아닐까? 일상의 부정적인 면모들 - 반복되는 일들의 지루함, 쓰레기 버리는 일 따위에서 느껴지는 찌질함, 만원을 아끼기 위해 하게 되는 거짓말의 추악함 등 - 은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주인공은 모든 편안함을 버리고 야생에서 살만큼 강한 사내지만, 마치 바퀴벌레를 보면 병적으로 소스라치는 어린 아이처럼 현실Real life에 심약하다. 사람이 싫어, 정확하게는 사람의 '거짓'이 싫어서 사람이 없는 야생으로 향했다. 이상주의자, 극단론자, 심미적 탐험가.
내가 보기에 좋은good 것들만 '진짜real'라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부정적인 일상에 지나치게 휘둘릴 때엔, 가끔씩 균형을 잡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자, 하지만, '진짜real'를 찾아 떠났다면 언젠가는 버려진 나머지 한 조각을 찾기 위해, 스스로 밀어냈던 나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감싸안기 위해, 일상으로 되돌아가자. 이 지독한 이상주의자가 '진짜real'의 나머지 한 조각이 일상에 묻혀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돌아갈 수 없을만큼.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이제 알았지만, 깨달음이 모습을 갖추어 드러낼 일상 위에 서 있지 못했다.
나는 이 영화를 Andreo라는 바르셀로나 친구에게서 추천받았다. 전날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고 하루 왠종일 우울해 있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는 같이 먹은 점심식사비를 혼자 계산했다. 고맙기보다 미안해하는 내게 그는 이 메시지를 주었다.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그러니까 이건 나를 위한 것이지 너를 위한 것이 아냐.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불쌍한 친구가 당한 사기를 함께 나누는 거야. 이걸 나누지 못하면 나는 행복을 얻지 못한다구. 너를 위한 게 아냐.'
혼자 있을 때면 무엇보다도 먼저 함께 있고 싶은 이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거기 있고, 나는 떠나왔다. 여행지에서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나눌 것들을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다, 나같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행자에게는 더더욱. 그럼 지금 돌아가면 나는 곧장 행복을 움켜쥘 수 있을까? 그들은 거기 있고 나는 무엇이든 나눌 준비가 되어 있고 그것이 행복임을 알기 때문에? 소설 <연금술사>의 '보물은 떠나온 곳에 있다'는 메시지처럼, 돌아가기면 하면 나는 그 보물을 찾아낼 수 있는 건가?
먼저, 나눌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오래 생각해봐도 흡족한 것이 없다. 나는 가진 게 없다. 무엇인가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행에 뒤쳐지는 느낌이 들지만,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던 나에게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가지고 싶다, 나누기 위해서. 나누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마음 밖에 딱히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다. 내 마음만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편안함이든,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들이든, 정성을 담은 한 접시 요리든. 그 무엇이든, 내가 원하고 그들이 원하면 가져와 나눌 수 있게.. 가지고 싶다.
200년 7월.
전 돈이 필요 없어요. 돈은 사람을 너무 신중하게 만드니까요.
알렉스, 좀 신중해질 필요도 있어. 내 말은... 네 책은 좋은 책이야. 하지만 나뭇잎과 열매만으로 살 수는 없잖아.
전 그게 꼭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중략)...
아주 사랑받고 잘나 아들 같애. 공평하게.
공평하게요?
무슨 뜻인지 알텐데..
쏘로가 말했어요. "사랑보다, 돈보다, 신념보다, 명성, 공평함보다는 진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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