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야말로 비판당할 자격이 있다. 영화의 아름다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리뷰를 쓰겠다.)
1. 남성적 시각
벤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여성과 소통하는 남성 캐릭터다.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션, ‘크기’, ‘정복’에 집착하는 매트, 묘기에 집착하는 배리, ‘THE BOSS'(그가 사용하는 컵에 새겨진 로고)에 집착하는 젠킨스, 쿵푸에 집착하는 브라이언, 여비서에게 집적대고 있는 갤러리의 알렉스 프라우드까지, 그 외 대부분의 남성 캐릭터는 주체할 수 없는 ‘마초 기질’로 인해 여성과의 소통에 실패한다. 마초들의 시도와 실패는 웃음을 유발한다. 물 세례를 맞고 던져진 우유에도 맞고 축구공에도 맞는다. 작품은 ‘마초 기질’을 희화화한다. 축구 경기를 둘러싼 시퀀스는 특히 흥미롭다. 축구경기는 젠킨스의 남자답기 위한 허풍에서 시작하더니 <글래디에이터>를 인용한 장엄한 출사표에, 26대0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승리의 신화에까지 치닫다가 젠킨스의 몸개그로 결론지어진다.
그들의 마초 기질이 희화화되면서, 대척점에 있는 벤이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작품은 벤을 통해 남성적 시각을 벗어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는 연출자가 미처 걸러내지 못한 남성적 시각이 배어있다.
첫째, 영화에서 ‘보는’ 행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모든 여성 캐릭터는 보여지는 대상이다. ‘본다’는 행위는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름다움을 찾아 시간을 멈추어서까지 ‘보는’ 행위는 벤이 찾아 헤매던 ‘사랑’의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 대사는 사랑에 대해 “아름다움에 둘러쌓인 채 삶의 매초 사이에 숨겨진 걸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게다가 벤이 인용하는 소설 속 여주인공과 샤론은 예술가와 사귀는 은밀한 환상으로 겹쳐지는데, 여성의 이런 환상은 화가와 벤의 ‘보는’ 능력, 구체적으로 만물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 (수퍼마켓 점원이 아닌) 진짜 자기를 보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어린 벤은 경험해보지 못한 여체를 ‘보고’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조금 큰 벤은 타냐 그린을 지켜보며 ‘그냥 본 게 아니라 그녀를 느꼈다’고 말한다. ‘real seeing'이 작품의 주제인 ’사랑‘까지 설명하는데, 작품 속 여성들은 모두 보지 못하고 보여지고 있다. 벤의 (가상의) 누드모델들, 스트리퍼들(나탈리, 딱총 쏘는 스트리퍼, 상상 속의 샤론의 스트립쇼까지), 포르노 잡지 속 사진들, 그리고 샤론까지도.
게다가 여성들은 보여짐을 즐기거나 이용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샤론은 우물쭈물하는 벤에게 먼저 키스를 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결국 보여짐에 굴복한다. 스스로 보지 못하고, 벤을 믿음으로써(trust me?) 벤이 보는 세상을 선물로 받는다. 반대로 수지는 유일하게 보여짐에서 자유롭다. 벤과 함께 순간순간들 속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수지는 ‘더 좋은 남자친구가 생길지 모른다고 안달’했다. 하지만 젠킨스의 생일파티에서 수지는 벤을 다시 ‘보는’데,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데, 그것은 거부당한다. 거절하면서 벤은 “누군가가 널 행복하게 해주길 기대하면 안돼.”라고 말하는데, 수지가 누군가가 행복하게 해주길 기대하는 캐릭터는 수지보다는 샤론이다.
마지막으로, 벤이 실연당하는 장면은 모두 목소리가 제거된 슬로우 모션으로 표현되었다. 그 외에 이 효과는 한번 더 나오는데, 그것은 젠킨스의 teamwork에 대한 쓸데없는 연설을 들을 때다.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을 가진 벤은 아쉽게도 듣는 능력이 모자라 보인다. 감정적으로 흥분한 여성의 말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연출에서 남성적 시각을 볼 수 있다.
특히 ‘보다’와 관련된 여성 캐릭터들의 수동적인 모습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의미와 충돌하면서 작품이 애써 피하려 했던 남성적 시각을 오히려 더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다.
2. 의미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특수효과 '일시정지'
일시정지, 멈춰진 세상이라는 독특한 효과 역시 사랑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다. 나레이션을 통해 직접 알려주는 깨달음은, 지나 간 과거의 1초보다 매초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사랑은 삶의 매초 사이에 숨겨져 있다는 것, 그래서 “잠깐 멈출 수 없다면 사랑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일시정지는 6번 일어난다. ❶ 수퍼마켓에서 시간을 빨리 가게 하기 위해서, 벤은 시간을 멈추어두고 여체를 그린다. ❷ 션과의 어린시절과 관련된 과거회상을 할 때, ❸ 비정상적인 흥분상태에 있는 축구경기를 하던 중에도 느닷없이 멈춘다. ❹ 샤론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그리기 위해서, ❺ 화나서 돌아서는 샤론을 잡아야 한다는 다급함에도 멈춘다. 마지막으로 ❻ 사랑이 이루어지고 샤론에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멈춘다.
벤의 독특한 능력에 대해서 작품은 나름대로의 배경을 제시한다. 시간을 멈추고 싶었는데, 실패했던 순간들을 보자. 어린 벤은 경험해보지 못한 여체를 직면하고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조금 더 커서, 벤은 여자 친구(타냐 그린)에게 반했고, 그녀와의 첫키스를 실패했고 이후 만날 수 없었다. Crush의 두 가지 뜻, '반하다'와 '실망하다' 사이의 시간에 벤은 잠깐 멈추어서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 샤론이 피클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에 반할 때도 벤은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 결정적 순간이었던, 이 모든 바람은 실패한다. 그리고 실패하기 때문에 일시정지는 fantasy로 날아가버리지 않고 현실에 발을 딛는다.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6번의 일시정지는 모두 벤에게 있어 결정적 순간이 아니다.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일시정지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❹, ❻은 이런 설정에 정합하지 않는다. 벤이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데생 작업은 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일과 밀접하다. 벤이 보는 아름다움은 점점 변해간다. 여체의 외면적인 아름다움에서 샤론의 내면적 아름다움으로 옮겨가고 그것은 습작에서 작품으로, 형편없는 그림에서 예술로의 발전이다. 벤은 샤론의 피부, 몸매, 특히 눈을 그리지만 표현되었던 것은 샤론의 꿈, ‘수퍼마켓의 네온 불빛에서 벗어나 남미를 여행하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그 작품들은 갤러리에 걸릴 자격을 얻는다. 만약 샤론을 그리던 그 순간이 벤에게 잠깐 시간을 멈추고 싶은 결정적 순간이 아니었다면, 그 작품들이 세간과 샤론에게서 받는 평가는 허구가 된다. 반대로 결정적 순간이었다면, 그것은 멈춰진 순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되는게 낫지 않을까? 실제로 샤론과 사랑에 빠지면서 벤은 시간이 비행기처럼 날아가고, 그 조종사는 자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한 ❹, ❻의 장면에서, 시간이 멈춘다는 설정은 이런 벤의 심리와 반대로 가고 있다.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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