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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좋아하세요? (리뷰)

[영화] Tokyo!(2008). 中 봉준호 편. Shanking Tokyo.
















자기만의 세계, 내면세계, 그리고 히키코모리.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은 개성있는 내면세
계를 가지고 있었다. 밖으로 굳이 나오고 싶지 않은가보다. 너와 담배피고 맥주 한 잔 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만남은 사양할게, 쓰미마셍, 차라리 각자 노는 것이 피차에게 나을거야,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이런 말들을 읽을 수 있었다. 흘러나오는 마리화나 연기, 신비로운 느낌의 음악, 그들은 꼭 각자의 스피커를 들고 다닌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있는데, 나는 온통 작가의 내면세계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파고드는데, 그것이 인간 본성의 뿌리에 닿고자 하는 것인지(문학 본연의 임무에 따라), 글이라는 통로를 뺀다면 그 역시 히키코모리를 즐기는 있을 뿐인지. 어쨌든 봉준호 감독에게도 일본인과 그들이 살고 있는 도쿄는, 만나주지 않는 사람들과 사람을 만날 수 없는 도시, 그런 이미지인가보다.

일본에 잠깐 놀러갔을 때, 나는 그런 점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저기서 청순한 여자가 긴 생머리를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지만, 어쩌면 어디선가 빛으로 쏘아낸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무도 그녀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뽑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다, 편안하다.

군복무 중에, 그 복잡한 인간관계들에 치여서, 나는 절대로 혼자 있고 싶었다. 그토록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할 수가 없었다. 처벌이 뒤따르는 위험한 행동을 하면서까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 헤맸었다. 내면세계로 빠져든다는 것도 어쩌면 복잡한 세상, 거대한 세상에 대한 도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불필요하게도 너무나 많은 관계들이 있다. 그 관계 속에는 사람이 없다. 결국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나조차도 없다. 사람이란 없다. 자신이 없어진다는 건 뭐 그런 것 같다. 혼수상태, 두려움, 사랑.. 과 같은 철저히 개인적인 일들마저 누군가가 버튼을 눌러줘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 아, 그래서 피자 배달 따위는 집어치우고 나를 찾아 내면세계로 빠져든다. 적어도 그곳에는 내가 있다. 

또, 세상은 거대함으로 나를 짓누른다.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큰 것을 갑자기 마주하게 됐을 때 머리가 한동안 어벙해지는 그 느낌으로, 한 사람이 상대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크고 세다. 지구 전체와 싸우는 느낌이다. 세상은 너무 커져 버렸다. 단순히 e메일을 보냈을 뿐인데도 어쨌든 나는 점점 더 세계적으로 일하고 있고, 사람들의 표정, 상사의 고함, 그 정신없는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분주함들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들임에 틀림없다. 내게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은데... 작은 세상이 좋다. 나만의 공간, 거기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만 있다. 적어도 나는 짓눌리지 않을 수 있다. 꿈이든, 사람이든, 나발이든, 일단 깔려 죽을 수는 없잖아.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는 것은 뭐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인가. 편안한 것은 정말로 매력적이다,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뜨거운 여름, 얼음 가득 시원한 라임 소다 한 잔 옆에 두고 팬티만 걸친 채로 혼자 누워 멋들어진 DVD 한 편을 감상하는 그런 일. 그래서 우리는 한 번씩 어딘가로 가고 싶다. 그리고 결국 떠난다. 여행이든, 방콕이든, 고향으로든, 낮잠 속으로든, 소설책 속으로든... 나만 있는 곳으로, 내가 있는 곳을 찾아.

잃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 그 속에서 피어날지도 모르는 미지의 감정, 그리고 이후의 새로운 세상... 사랑 버튼을 누르고 지진이 일어났다. 두 사람만은 들어가지 않았다. 

내 생각은, 나를 찾았다면 이제 남아있는 더 중요한 일은 돌아가는 일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듯. 다시 일상으로... 여행에서는, 나만 있는 그 곳에는, 물론 매일같이 사람을 만나 나름의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빽빽한 일상마저 비집고 들어오는 알짜배기 삶, 그런 맛이 없다. 보기 좋은 것들, 가벼운 기분, 기분좋은 만남, 미지의 것에 대한 설렘... 이런 것들은 뭐랄까, 박제된 현실일 뿐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기는 싫다. 내가 원하는 삶은 사랑하는 이들과 무엇이든 나누는 삶이라며, 나는 돌아가고 싶다.  



2010년 5월.








도쿄!
감독 레오 까락스,봉준호,미셸 공드리 (2008 / 프랑스,일본,한국)
출연 아오이 유우,카가와 테루유키,카세 료,후지타니 아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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